오찬종 매일경제신문 산업부 기자

investing : 미국에서 열린 세계 최대 정보통신 박람회(CES2024) 현장을 찾았다. 라스베이거스의 이국적 풍경 속 CES 현장은 이질적이게도 인기 사극 ‘고려거란전쟁’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했다. 전체 3500개 참여 기업 중 가장 많은 1100개 사가 참여한 중국은 국내 기업을 사방에서 둘러싸고 신제품을 포화처럼 쏟아냈다. 한국 기업들은 위축되지 않고 초격차 기술력을 무기로 수성전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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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코로나19 봉쇄와 미·중 갈등 격화로 대거 불참했던 중국 기업들은 올해 지난 1년간 수련에 매진했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듯 ‘세계 최초’를 강조한 신제품들을 선보였다.
특히 한국을 제치고 글로벌 점유율 1위로 올라선 중국 TV 기업들은 프리미엄 제품군에서도 한국을 거세게 압박했다. 하이센스는 울트라발광다이오드(ULED) 새로운 라인을 선보였고 TCL은 세계 최대 115인치 퀀텀닷 마이크로 LED(발광다이오드) TV 신제품을 전시했다.

TV 등 가전뿐 아니라 미래 모빌리티 분야에서도 중국의 도발적인 시도가 눈길을 끌었다. 샤오펑은 공상과학 만화처럼 자동차에 프로펠러를 단 플라잉카를 공개했다. 샤오펑은 “이미 시험 비행을 성공적으로 완료했다”며 자신감을 드러내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기술 굴기에 나선 것은 중국뿐이 아니다. 한때 최신 기술 시장에서 입지가 좁아지며 도태됐다는 평가를 받았던 일본도 다시 칼을 갈고 나타났다.

소니는 혼다와 공동 개발한 전기차 ‘아필라’를 공개했다. 아필라는 이르면 2025년 본격적으로 양산될 전망이다. 테슬라의 전기차 배터리 파트너인 파나소닉은 부스 안에 투명 자동차 모형을 놓고 자사의 충전 기술을 과시했다.

삼성과 LG 등 한국 기업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초격차 기술을 선보이며 맞불을 놨다. 중국 TCL이 ‘폴더블 TV’를 내놓자 삼성과 LG는 ‘투명 TV’를 공개하며 기술력 차이를 보여줬다. 현대차는 일반차를 아예 전시에서 빼버리고 AI를 이용한 솔루션과 수소 모빌리티 기술을 집중 조명하면서 차별화를 꾀했다.

이와 함께 올해는 글로벌 경쟁에 밀리지 않기 위해 국내 기업이 서로 힘을 모으는 ‘팀 코리아’ 전략이 돋보였다.

대표적인 게 삼성전자와 현대차 연합이다. 두 회사는 CES에서 스마트홈과 차량용 반도체 분야 동맹을 맺었다. 과거 삼성전자의 자동차 사업 진출을 두고 앙숙 관계였던 것과는 180도 달라진 모습이다. 이뿐 아니라 정의선 현대차 회장과 최태원 SK 회장 등 국내 기업 리더들은 서로 간 부스를 잇달아 찾으면서 협력 방안을 모색했다.

다만 이같은 ‘팀 코리아’ 전략의 핵심이어야 할 정부 역량이 올해도 분산돼 아쉽다. 중국 정부는 행사장 한 축인 웨스트 게이트 호텔부터 노스 사이드 관을 거점으로 삼고 전략적으로 자국 스타트업의 홍보 역량을 집중했다.

반면 한국은 각 지자체와 공공기관, 대학이 산발적으로 스타트업 홍보관을 구성하면서 힘을 모으지 못했다. 일부 기업은 중국관 한복판에 파묻혀 관람객들에게 중국 기업으로 오해받았다. 관람객 동선과 동떨어진 구석에 전시관이 마련돼 주목을 전혀 받지 못한 스타트업도 있었다.

고려가 거란 대군을 이길 수 있었던 건 현종을 중심으로 최전방 흥화진부터 남녘 호족들까지 힘을 한데 모았기 때문이다. 우리도 스타트업부터 대기업까지 가진 역량을 유기적으로 조직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관심이 필요하다. 이대로 시너지를 내지 못하면 미래기술 전쟁에서 한국의 수성전은 점점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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