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vesting :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여는 ‘정영선: 이 땅에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 전시(4월5일~9월22일)는 1세대 조경가 정영선(1941~ )의 50여 년에 걸친 작업을 아카이브 중심으로 펼쳐서 보여준다.

ai 투자 : 미술관에서 제공한 전시 소개 팜플렛을 위주로 정영선의 작업을 연대순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불국사 성역화(1974), 충청북도 자연학습원(1981), 아시아선수촌아파트, 아시아공원(1986), 국립수목원(1987), 한국종합무역센터(1987), 올림픽선수촌아파트(1988), 도투락월드(1990), 완도식물원(1991), 독립기념관 명소화(1994~6), 여의도샛강생태공원(1997, 2007), 어린이대공원 환경공원(1998), 예술의전당(1998), 대전엑스포’93 박람회장(1993), 휘닉스파크(1995), 호암미술관의 희원(1997), 마우나오션리조트(1999), 인천국제공항(2001), 탑골공원(2002), 선유도공원(2002), 국립중앙박물관(2005), 해동경기원(2006), 조안리 정원(2007), 서울아산병원의 녹지공간(2007), 파주출판도시 경관계획(2007, 2012, 2014), 로스앤젤레스 한국정원(2008), 포항 별서정원(2008), 제주특별자치도 경관 및 관리계획(2009), 광화문광장(2009), 현대중공업 영빈관 정원(2010), 모헌(2011), 제주 오설록, 티 뮤지엄(2011, 2023), 원다르마센터(2011), 사유원(2012), 경춘선 숲길(2015~2017), 아모레퍼시픽 신사옥(2016), 원료식물원(2019), 남양 성모성지(2021), 왕창교회 작은정원(2023).

정영선의 작업은 1세대 여성 조경가의 위상을 반영하듯 국가적인 사업, 재벌기업 및 부호의 정원, 주요종교 시설을 망라한다. 단일 전시장에서 이 많은 프로젝트를 한꺼번에 보여준다고? 필자는 미술관에서 이 전시를 준비한다는 소식을 들은 이후 과연 어떤 모습으로 보여줄지 관심이 쏠렸다.

전시는 지하 1층 제7 전시장과 전시마당(지하정원)에 펼쳤다. (6동 교육프로그램, 종친부마당의 조경은 부수적인 것이어서 언급하지 않는다.) 제7 전시장에는 아카이브를, 전시마당에는 작은 정원을 조성했다. 조경이 나무, 풀, 돌, 물을 이용한 랜드스케이프 아키텍처인 바, 실물을 보여주어야 관객이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전시마당의 미니정원은 제7전시장 아카이브와 상보적이다. 두 가지 점에서 그러한데, 첫째 미니정원은 인위적으로 땅의 무늬, 즉 굴곡과 요철을 재현하고 그에 맞춰 자생종 초목을 심고 흔히 보이는 돌(바위)을 박았다. 정영선의 작업이 진경산수의 재현임을 요약했다. 둘째 제7전시장은 미니정원의 구조를 그대로 따와, 사방벽 상단에 교목 영상을, 하단 관목 높이에 사진자료를 두르고, 중앙 바닥에는 풀과 바위에 해당하는 아카이브를 펼쳤다. 정영선의 조경작업이 사이트를 그리드로 나누어 정확히 그린 식재 설계에 따라 실행에 옮겨지는 바 이를 재현한 점이 눈에 띈다. 관객은 작가의 작업을 재현한 디자이너의 의도에 따라 멀리서, 가까이서, 또는 쭈그리고 앉아 아카이브를 볼 수 있다. 방형 강화유리 아래에 놓인 자료들은 발굴 중인 유적지의 지중유물과 흡사하여 정영선의 작업이 역사적이라는 자리매김에 해당한다.

아카이브 펼침의 얼개가 그렇다는 것이고, 콘텐츠를 보여주는 방식은 또 다른 문제다. 정영선의 전시는 일종의 개인전인 셈인데, 일반적인 아티스트의 개인전이 그러하듯 시대별로 대별하여 조경작업의 변천을 조망하지 않을까 예상했다. 그게 아니었다. 아카이브는 △패러다임의 전환, 지속가능한 역사쓰기 △자연과 예술, 그리고 여가생활 △조경과 건축의 대화 △정원의 부활 △세계화 시대, 한국의 도시경관 △하천풍경과 생태의 회복 △식물, 삶의 토양 등 7개의 카테고리로 대별하여 벽과 바닥에 유기적으로 배치하였다.

이러한 분류는 정영선의 작업을 시기별로 분류하는 게 무망하거나 무의미함을 뜻한다. 다시 말해 7개의 카테고리를 관류하는 △지속 가능성, △자연과 인공의 조화, △조경과 건축의 융합이 정영선 작업의 요체임을 말한다. 작가는 여러 인터뷰에서 자신이 작위자이기보다 연결자임을 표나게 내세운다. 인위적인 서양의 조경과 차별되는 지점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여의도샛강생태공원, 경춘선숲길, 선유도공원, 아모레퍼시픽 신사옥, 호암미술관 희원 등에서 그의 조경철학이 어떻게 구현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여의도샛강생태공원, 경춘선숲길, 선유도공원은 재구조화 작업에 해당한다. 여의도샛강은 한강본류 정비와 함께 물길이 후퇴하여 땅으로 드러나고, 끊긴 물길 주변에 수양버들과 수초가 우거진 곳. 서울시에서는 이를 밀어내고 각종 운동장을 만들고자 했다. 범람시 수양버들이 물의 흐름을 방해하고 인공 설치물이 휩쓸려갈 것이다라는 일반론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원래의 생태환경을 살린 채 산책로, 벤치를 조성하여 수목과 물고기와 인간이 공존하는 쉼터로 만들었다. 선유도공원은 수돗물 취수가 상류로 이동함에 따라 폐쇄된 상수도 정수장을 생태공원화한 곳. 정수시설을 상당부분 그대로 살리고 그곳에 수생식물을 심어 정수시설의 본래 기능을 되살려 생태교육의 장으로 만들었다. 경춘선 숲길 조성도 이와 비슷하다. 광운대역~갈매역 구간의 폐철도 구간을 산책로로 재탄생 시켰다. 주목되기는 최소한의 작업으로 철도가 갈라버린 마을공동체를 부활시킨 점이다. 철도에 가로막혀 택지가 밀집한 구간의 철길 주변에 공동텃밭을 조성함으로써 주민들이 함께 남새를 길러 나눠 먹게 했다.

아모레퍼시픽 신사옥, 호암미술관 희원은 재벌 소유지만, 공익에 기여하는 점에서 작가의 철학과 통한다. 전자는 작가가 간여해 조성된 정원을 시민의 통로로 개방하고, 후자는 시간 예약제로 입장하여 한국정원의 정수를 감상할 수 있다.

다시 전시 이야기로 돌아가자.

조경작업이 건축의 하위장르로 취급돼 왔고, 건축과 경계가 모호한만큼 이를 독자적인 영역으로 보여주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예를 들어 선유도공원의 경우 조성룡 건축가, 아모레퍼시픽신사옥의 경우 데이비드 치퍼필드와 협업이어서 도면이나 사진자료가 똑 부러지게 건축-조경을 구분하지 않는다. 전시자료들이 자칫 정영선만의 것으로 간주될 위험이 있다.

아카이브는 일종의 박제. 프로젝트 설계 및 구현 당시의 자료인 바, 조경이 시간의 경과에 따라 작가의 의도가 시현되거나 공공의 이용행태에 따라 변화하는 점을 감안하면 극히 일부분을 평면적으로 보여줄 따름이다. 미술관 쪽은 이러한 전시의 한계를 샘플정원 외에 다큐영상 ‘땅에 쓰는 시’ 상영, 작가와의 답사, 학술대회 등을 마련하여 전시의 품질을 높일 계획이다.

처음으로 선보이는 조경아카이브 전시인 점에서 기획자나 디자이너한테는 큰 도전이었을 법하다. 이 점에서 정영선 아카이브전은 미술관 스태프의 저력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