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볕 무더위가 도저히 끝날 것 같지 않은 날이 이어졌습니다.

산 속이라 올해처럼 요란한 무더위에도 여전히 선풍기 없이 지낼 만 했지만 도시는 밤까지 더위가 이어져 밤잠을 설치는 경우가 많았다니 올 여름 지내느라 모두들 고생 하셨습니다.

무더위를 피해서 많은 사람들이 산으로 계곡으로 모였습니다. 평소엔 인적 드물고 차 밀리는 일이 없는 지리산 계곡에도 사람들과 차로 넘쳐났습니다.

사람 입장에서 보면 산과 계곡은 여름 한 철 이리 많은 사람들을 받아들이기 위해 세 계절을 그리도 열심히 준비하는지 모릅니다.

봄 가뭄에 계곡물이 실개천이 되어 물에 깊이 잠겨있던 계곡 속살이 훤히 드러나 이번 여름엔 사람들이 계곡에서 물놀이 할 수 있을지 걱정했는데 여름 무더위 시작 전에 내린 며칠 동안 비로 계곡은 어느새 물을 그득 채웠습니다.

맑고 투명하게 그득한 계곡물에서 무더위를 식힌 많은 사람들이 떠나자 무더위는 거짓말처럼 물러갔습니다. 산 중은 아침저녁으로 시원한 바람이 불고 풀벌레 소리 가득합니다.

하지만 무더위 지나자마자 며칠 동안 비가 내립니다. 경험해보지 못한 가을장마입니다. 어느 해 부터인지 모르지만 여름 끝자락에 장마가 시작하는 날씨가 되었습니다.

여름 장마보다 훨씬 많은 비가 쏟아집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온 가을장마는 지리산 계곡을 거대한 소용돌이로 만들고 있습니다.

지난해 가을장마로 무너진 계곡 따라 난 찻길을 올해도 훔쳐갈 듯한 기세로 계곡물이 소용돌이 치고 있습니다. 거대한 용이 하늘을 오르기 위해 세차게 꿈틀대는 모습 같습니다.

산중에서 살다보면 집수리는 더운 여름에 하게 됩니다.

봄엔 약초, 나물하느라 보내고 가을엔 산열매 따러 다니다 보면 집수리 할 시간이 좀처럼 나지 않습니다. 겨울엔 땔나무 하러 다녀야 하는 것 외에도 추운 날씨 때문에 집수리를 할 수 없습니다.

처음 이곳에 자리 잡을 땐 네 식구가 다리 뻗고 누울 방 한 칸 만드는 일이 그 어떤 일보다 시급한 일이었기에 겨울이고 봄이고 따질 겨를이 아니었습니다.

차도 다니지 못하는 산 속에, 집짓기 경험도 없이 만들었던 집이 몇 년 동안 풍상을 겪으면서 여기저기 문제가 생겼습니다. 산 속이다보니 집 뒤 쪽은 집 바닥보다 땅이 높아 비가 많이 오면 물이 아궁이로 새어 들어오고 겨울만 되면 추위를 피해 집 안으로 들어오려는 쥐들이 필사적으로 구멍을 뚫는 바람에 아궁이 불을 지피면 집 안에 연기가 자욱해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물이 새면 요령껏 불을 지피고 연기 새는 곳만 겨우 땜질하며 버텨왔는데 여름을 맞으면서 근본적인 처방을 하기로 했습니다.

새로 지은 것도 아니고 있는 집을 살기 편하게 수리한 집이라 어쩔 수 없는 면도 있지만 경황없이 급하게 집수리를 하면서 미흡하게 한 곳은 어김없이 문제가 생기는 걸 보면 기초를 단단히 하지 않으면 아무리 땜질을 해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나봅니다.

어디 집만 그렇겠습니까?

우리 삶도 기초를 튼튼히 다지지 않고 위로만 쌓는다면 언젠가는 무너지기 마련입니다.

집 바닥으로 들어오는 물을 해결하기 위해 집 바닥을 높일 수는 없으니 집 뒤쪽을 깊게 파서 물고랑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곳곳에 큰 바위들이 있어 물고랑이 삐뚤삐뚤하고 3일이나 걸렸지만 다 파고 나서 닥친 가을장마는 그 효과가 어떤지 알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예상보다 효과가 훨씬 좋았습니다. 계곡물이 넘칠 듯 불어나 천둥치듯 흐르는데 아궁이에 물이 새지 않았습니다.

연기 새는 바닥도 뜯기로 했습니다. 방구들을 뜯고 다시 놓을 것까지 계획했는데 예상보다 수월하게 공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딸아이 방부터 연기 새는 곳 바로잡고 목욕탕에서 물기가 스며, 목욕탕과 붙은 흙벽이 눅눅해지는 것을 바로잡기 위해 방 안 짐들을 모두 들어냈습니다.

짐을 쌓아두고 살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데도 그동안 쌓아둔 잡동사니들이 많습니다.

집수리는 물리적인 불편함만 고치는 것이 아니고 마음에 쌓아둔 짐도, 그동안 쌓아둔 잡동사니도 버리면서 함께 정리하는 시간입니다.

연기 막고 벽으로 들어오는 물기까지 해결하느라 벽지까지 몽땅 뜯어내고 이틀 전에야 도배까지 새로 마쳤습니다. 벽이 뽀송뽀송하고 방바닥까지 뽀송뽀송해 방이 새로워졌습니다.

목욕탕 앞 마룻바닥은 물기와 연기로 8년 동안 시달린 나무들이 허깨비가 되어 뜯어내지 않아도 스스로 무너질 판이었습니다.

바닥은 쥐가 뚫은 구멍도 있고 물이 새면서 생긴 구멍도 있어 그동안 연기 새는 걸 어떻게 참고 견뎠나 싶습니다.

두 번 다시 쥐가 구멍을 내지 못하도록 문명의 이기인 시멘트로 꽁꽁 막고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판자로 마루를 만들고 있습니다. 마루를 놓기 전에 큰방 작은방 아궁이에 불을 지펴 연기가 새는지 아닌지 살피고 미세한 틈으로 새어나오는 연기를 막고 또 막고 나서야 마루를 만들고 있습니다.

그동안 연기 새는 것 때문에 아궁이에 불 넣는 것이 부담이었는데 연기구멍 막고 나서 연기가 거실로 새어나오지 않으니 자꾸 아궁이에 불만 넣고 싶습니다.

그러다 어제는 방이 얼마나 더운지 방문을 활짝 얼어놓고 자는 바람에 풀벌레소리만 실컷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