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vesting : 2024년 1월10일, 암호화폐 역사에 큰 변곡점이 생겼다. 이날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11개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를 승인했다. 2013년 윙클보스 형제가 최초로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을 신청한 지 11년 만이다. 평가는 극명히 갈렸다. SEC의 판단이 역사적인 진보라고 자축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금융 안정성을 해치는 악수라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다. 누구의 말이 맞을지 현재로선 알 수 없다. 다만 이 결정으로 비트코인은 세계 최대 금융시장인 미국에서 ‘기초자산’으로서 가치를 인정받게 됐다.

ai 투자 : ETF는 다수 투자자로부터 돈을 위탁받아 투자하는 펀드의 한 종류다. 상장지수펀드(Exchange Traded Fund)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증권시장에서 주식처럼 사고팔 수 있고, ETF 가격이 특정 지수의 변동을 따라가도록 설계된다. 비트코인 현물 ETF는 기초자산인 비트코인의 가격을 추종한다. 사람들이 투자한 돈을 모아 발행사가 그에 상응하는 비트코인을 대신 구매하고 보관한다는 점이 직접 투자와의 차이다.

비트코인 현물 ETF가 가진 장점은 ‘상장’이라는 특징에서 나온다. 주식처럼 사고파는 것이 가능하기에, 비트코인 현물에 직접 투자하기 위해 떠안아야 하는 여러 고민들을 덜 수 있다. 가상자산 거래소에 가입하고 가상자산 지갑을 만들 필요도 없으며, 거래소가 믿을 만한지 걱정할 이유도 없다. 그저 비트코인 ETF를 사고 비트코인 현물과 똑같은 수익률을 받아들이면 된다.

편의성을 더하긴 했지만, 비트코인이라는 단일 자산을 기초로 하기에 비트코인 현물 ETF는 결국 비트코인과 사실상 동일한 상품이다. ETF라는 껍질을 한 겹 씌워도 결국 내용물은 비트코인이라는 의미다. 이는 그동안 SEC가 비트코인 현물 ETF를 승인하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SEC는 대체로 비트코인에 대해 강한 불신을 표출해왔다. 비트코인 관련 ETF 신청을 기각할 때 SEC는 비트코인이 “사기 및 조작 행위와 실행을 방지하기 위해 설계되지 않았다”라는 점을 늘 강조했다. 비트코인을 불신하기 때문에, 비트코인 관련 ETF 역시 불신의 대상이 됐다.

그러나 2021년, 견고했던 SEC의 빗장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2021년 10월, SEC는 ‘비트코인 선물 ETF’를 최초로 승인했다. 선물은 파생상품의 일종으로, 미래의 상품을 사고파는 계약이다. 상품의 미래 가격을 정확히 예측할수록 투자자의 수익률은 높아진다. 비트코인 선물 거래는 시카고상품거래소(CME) 등에서 2017년 12월 이래 허용된 터였다. SEC는 이 비트코인 선물을 기초자산으로 한 ETF를 승인하며 그 이유로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갖췄다는 점을 들었다. 비트코인 선물시장은 CME가 감시하고 있으며,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의 감독을 받기 때문이다.선물 ETF 발판 삼아 현물 ETF 승인까지

일보 전진을 이룬 금융사들은 비트코인 선물 ETF를 발판 삼아 SEC를 공략했다. 선봉에 선 업체는 그레이스케일(Grayscale)이었다. 그레이스케일이 내세운 논지는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 비트코인 가격을 추종한다는 점에서 비트코인 선물 ETF와 비트코인 현물 ETF의 차이가 거의 없다는 주장을 펼쳤다. “비슷한 경우에 대해선 비슷한 처분을 내려야 한다”라는 원칙에 입각해, 유독 비트코인 현물 ETF만 승인하지 않는 것은 부당하다고 비판했다. 둘째, 비트코인 선물 거래소인 CME와 ‘감시 공유 협정’을 맺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감시 공유 협정은 SEC가 ETF 발행사들에게 요구해온 주요 승인 조건 중 하나다.

그러나 SEC는 그레이스케일의 논지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여러 가지 법적 논리가 동원됐지만 핵심은 한 가지였다. CME와의 감시 공유 협정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SEC는 선물시장에 대한 감시로는 비트코인 현물 ETF에서 발생하는 위법행위를 인지하지 못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법원의 생각은 SEC와 달랐다. 지난해 8월 컬럼비아 특별구(워싱턴 DC) 항소법원은 SEC가 의심에 대한 합리적인 근거를 대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SEC의 판단은 자의적이라고 판결하며 소송을 제기한 그레이스케일의 손을 들어줬다. 물론 해당 판결이 ‘비트코인은 안전한 자산’이라고 인정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비트코인 선물 ETF를 승인한 SEC가 비트코인 현물 ETF를 승인하지 않을 절차적 정당성이 부족하다고 본 것이다.

법원의 판결에 따라 비트코인 현물 ETF를 승인하긴 했지만, SEC 내에선 여전히 반대 의견이 많았다. SEC 위원 총 5명 가운데 3명만 승인에 찬성했다. 승인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게리 겐슬러 의장이다. 겐슬러 의장은 암호화폐 시장을 무법지대에 비유할 만큼 강경한 입장이었으나 법원의 판결을 거스르진 못했다. 반면 법원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위원 2명은 여전히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반대 의사를 표한 캐럴라인 크렌쇼 위원은 승인 직후 발표한 성명서를 통해 “궁극적으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은 우리가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는 투자자들이 될 것이라는 점이 두렵다”라고 말했다.

게리 겐슬러 의장 역시 찬성표를 던지긴 했지만, 암호화폐에 대한 우려는 여전하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는 성명서에서 “비트코인은 주로 투기적이며 변동성이 심한 자산이고 랜섬웨어(금품을 요구하기 위해 사용자의 컴퓨터를 장악하는 악성 소프트웨어), 자금세탁, 제재 회피, 테러 자금 조달 등 불법적인 행동에 이용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특히 비트코인 현물 ETF를 승인하긴 했지만, “비트코인을 승인하거나 지지하지 않는다”라고 별도 명시했다.

수많은 우려를 딛고 비트코인 현물 ETF가 상장되자, 이를 계기로 비트코인 가격이 상승할 것이라는 장밋빛 기대가 대두했다. 비트코인 투자가 용이해진 만큼 비트코인 수요가 늘어나리라는 예측에서다. 특히 글로벌 기관투자자들의 비트코인 투자가 활발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등장했다. 기관투자자들이 비트코인에 직접 투자할 때 가장 부담스러운 요인 중 하나는 바로 보관이다. 디지털 자산인 비트코인은 언제나 해킹될 위험에 노출된다. 해킹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없애기 위해선 인터넷 연결을 차단해야 하지만, 이 역시 문제가 있다. 인터넷을 연결하는 데 시간이 걸려서 원하는 가격에 거래하지 못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비트코인을 기초자산으로 발행된 ETF에 투자한다면 이러한 부담은 사라진다. 일정 부분 수수료를 부담하는 대신, 보관에 대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주식과 동일하게 거래할 수 있기 때문에 회계 처리를 위해 새로운 항목을 만들 필요도 없다. 여러모로 기관투자자에게는 우호적인 환경이다. 비트코인 선물 ETF 역시 동일한 이점이 있지만, 선물 거래 특성상 수수료가 비싸다는 단점이 있었다. 장벽이 낮아진 만큼 ‘큰손’ 투자자들이 들어온다면 수요가 증가해 가격이 올라가리란 기대가 자라났다.

기대와 달리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 이후 비트코인은 급격한 하락을 기록했다. 승인 직후 4만9000달러를 넘어섰지만, 2주 뒤에는 4만 달러 선이 붕괴되며 오히려 승인 전보다 낮은 가격을 기록했다. 아이러니하게도 하락장을 이끈 것은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의 선봉장인 그레이스케일이었다. 그레이스케일은 2013년부터 이미 비트코인 펀드(GBTC)를 운영하고 있었다. 기존 GBTC가 ETF로 전환되자 투자자들은 차익 실현을 시작했다. 비트코인 현물 ETF가 처음으로 거래된 1월11일 이후 8거래일간 GBTC에서 순유출된 자금은 40억 달러(약 5조3400억원)에 달했다. 압도적 1위 비트코인 ETF인 GBTC에서 차익 실현 매물이 쏟아지며 비트코인 가격은 약세를 면치 못했다.한국에선 발행도 중개도 전부 금지

이번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과 그에 따른 비트코인 가격 변동은 한국에도 영향을 미쳤다. 당장 금융 당국의 대응에 관심이 쏠렸다. 한국 금융 당국이 정한 방향성과 별개로, 대응이 미숙했다는 비판이 쏟아진다. 미국 SEC의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은 ‘깜짝 이벤트’가 아니었다. 이미 지난해 8월 미국 법원의 판결이 나온 만큼, 이번 SEC의 입장 변화는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한 범주였다. SEC의 결정을 앞두고 비트코인의 가격이 꾸준히 오름세였던 것도 이 기대감을 반영한 결과였다.

그러나 SEC 승인 직후 한국 금융 당국은 마치 아무것도 예상하지 못한 듯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동안 한국에서 비트코인 현물 ETF는 거래 가능한 투자상품이었다. 미국보다 앞서 독일과 캐나다 증시에 비트코인 현물 ETF가 상장되었고, 한국에서도 해외 증권 거래 시스템을 통해 이들 ETF를 거래할 수 있었다. 한국인의 독일·캐나다 ETF 거래에 대해 금융 당국은 그동안 어떠한 입장도 내놓지 않았다. 그런데 미국이 비트코인 현물 ETF를 승인하자 1월11일 금융위는 비트코인 현물 ETF 중개가 “기존 정부 입장과 자본시장법에 위배될 소지가 있다”라고 발표했다. 별다른 규제를 하지 않았던 독일·캐나다 ETF 거래 역시 갑작스럽게 매수가 중단되었다(매도는 가능하다).

해외 증시에 상장한 암호화폐 현물 ETF 거래 문제는 작은 이슈에 불과해 보일 수 있다. 이미 한국에서 개인투자자들은 암호화폐 거래소를 통해 직접 투자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개인이 비트코인 현물 ETF에 투자할 유인은 크지 않다. 기관투자자의 경우에도 큰 변화가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한국의 기관투자자들은 투자할 수 있는 자산을 엄격하게 관리한다. 중간 정도 신용 리스크를 가진 채권에도 투자가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따라서 비트코인 현물 ETF 중개가 가능해지더라도 기관투자자들이 투자를 급격히 늘릴 가능성은 떨어진다.

더 중요한 것은 이번 SEC의 ETF 승인이 한국 금융 당국에 큰 질문거리를 안긴다는 점이다. 한국에서도 비트코인 현물 ETF를 발행할 수 있을지, 관련 법이 개정될지, 암호화폐에 대한 그동안의 태도에 변화가 생길지에 금융권 전체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동안 한국 금융 당국은 암호화폐에 대해 보수적인 태도를 취해왔다. 2017년 12월 정부는 ‘가상자산 관련 긴급 대책’을 발표했고 당시 기조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당시 대책에 따라 현재 제도권 금융기관들은 암호화폐를 보유·매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한국에서도 비트코인 현물 ETF를 발행할 수 있게 하려면 6년 넘게 이어져온 정부의 기본 입장을 바꾸어야 한다. 암호화폐에 대한 리스크 관리 체계가 근본적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의미가 된다.

당장 금융 당국의 기조 변화를 요구할 필요는 없다는 주장도 있다. 박선영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국의 가상자산 규제 완화가 시급하지도 않을뿐더러, 위험하다고 주장한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한국은 전체 자산시장의 규모에 비해 암호화폐에 대한 리스크 노출 정도가 크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원화는 달러화를 제치고 암호화폐 거래량 비중 1위를 기록했다. 미국과 한국의 자산시장 규모 차이,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지위를 고려해본다면 한국인들의 원화 자산이 지나치게 많이 암호화폐에 노출돼 있다고 할 수 있다. 현 상황에서 가상자산 규제를 완화한다면 리스크 증가가 가속화할 수 있다.

한국이 미국의 뒤를 따라가야 할 만큼비트코인이 세계적으로 신뢰를 얻어가고 있다고 보기도 힘들다. 비트코인 현물 ETF가 미국에서 승인되긴 했지만 암호화폐에 대한 경고는 여전하다. 지난해 1월 미국 행정부는 암호화폐에 대한 로드맵 발표에서 “지난 한 해(2022년) 동안 전통 금융기관의 암호화폐에 대한 노출이 제한되어 있었기 때문에 암호화폐의 혼란이 더 넓은 금융시스템으로 확산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라고 평가했다. 박선영 교수는 “SEC 결정은 비트코인 현물 ETF를 막을 법이 없었기에 내려진 것이고, 오히려 미국에서도 암호화폐에 대한 규제 당국의 노력을 계속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금융위도 고민은 필요하겠지만 현재까지 한국은 암호화폐에 대한 규제를 잘 해왔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갖가지 의심과 비판에도 불구하고 암호화폐는 금융 상품으로서의 입지를 키워왔다. 암호화폐 옹호론자들은 벌써부터 이더리움과 같은 알트코인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ETF 상장도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도 전통 금융시장에 대한 암호화폐의 도전은 많은 반대에 부딪힐 예정이다. 무엇보다도 암호화폐가 지난 15년 동안 자신의 쓸모 또는 존재 이유를 증명하지 못한 탓이 크다.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에 반대한 캐럴라인 크렌쇼는 성명서에서 근본적인 비판을 던졌다. “비트코인의 기술이 그렇게 혁신적이라면, 왜 그 용도가 주로 기존 금융시스템을 재현하는 데 그치는가? 심지어 규제와 투자자 보호는 더 적고, 불투명성과 위험은 더 커지는 방식으로 말이다.”기자명주하은 기자다른기사 보기 [email protected]#비트코인#비트코인 현물 ETF#박선영#암호화폐#가상자산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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