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vesting :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의원총회에 처음 참석한 가운데 나온 당론은 이태원 참사 특별법에 대한 '거부권 행사 건의'였다.

재원 : 지금까지 여당이 건의라는 형식을 취했던 건 '짜고 치는 고스톱'에 불과한 요식행위였던 만큼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기정사실이라는 게 지배적인 관측이다. 참사 이래 오체투지와 단식, 몸싸움 등 진상규명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몸부림을 다했던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은 끝내 삭발과 혈서라는 극한 상황에까지 내몰리며 "이제 뭘 더 해야 하나. 몸에 불이라도 붙여야 하나"라고 절규했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18일 오전 국회에서 의원총회를 마친 뒤 기자들을 만나 "의원들의 총의를 모아 이태원 특별법에 대한 대통령의 재의요구권 행사를 건의하기로 정했다"며 "이태원 특별법은 상임위원회와 본회의 과정, 모든 절차를 야당 단독으로 처리했다. 이제껏 특별한 조사가 필요한 기구를 설치하는 특별법을 처리함에 있어 여야가 합의 처리해 온 관행을 철저히 무시했다"고 말했다.

이어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 구성도 공정성을 담보할 수 없어 공정한 조사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판단했다"면서 "특조위가 불송치나 수사 중지된 기록까지 열람할 수 있도록 규정한 것도 그동안 세월호 참사 등 어떤 재난 관련 특조위에도 유사한 입법례가 없다. 재탕, 삼탕, 기획 조사 우려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 "국회의장 중재안을 중심으로 여야 협상을 진행해 몇 가지 독소조항을 빼면 합의에 이를 정도로 의견이 접근됐는데 애초 민주당 안을 의결했다. 대통령 재의요구권 행사를 유도해 정치적 타격을 입히고 총선에서 계속 정쟁화하기 위한 의도"라며 "민주당에 특조위 구성의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안, 독소조항을 제거하는 안을 가지고 재협상할 것을 제안한다"고 전했다.

윤 원내대표가 '재협상'을 거론했지만 이는 사실상 특별법의 형해화, 특조위의 무력화를 전제로 한 것이어서 거부권 행사의 명분을 만들려는 물타기용 제안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뻔한 눈속임을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나 민주당 측이 수용할 리도 만무하다. 특별법은 19일 정부로 이송될 예정이다.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는 이날 오후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정민 유가협 운영위원장은 이 끝을 알 수 없는 정권의 잔혹한 패륜을 되새기며 다음과 같이 발언했다.

"우리는 지금껏 온몸을 던져서 정부에 호소하고 아이들의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애원하고 매달렸습니다. 어제도 눈비가 쏟아지는 궂은 날씨에도 우리 유가족들은 아이들의 영정을 끌어안고 아이들의 목소리를 들어달라고 침묵 행진을 했습니다. 그럼에도 국민의힘은 저희를 또 다시 외면했습니다. 참으로 비정한 정치세력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희는 오늘 억울하고 참담한 이 한을 뼛속 깊숙이 새겨 넣겠습니다. 끝끝내 우리를 국민의 한 사람으로 인정하지 않고 적으로 간주했습니다. 우리도 (여당을) 적으로 대해주겠습니다. 앞으로 우리 머릿속에는 대한민국의 여당은 없습니다. 우리는 국민의힘 자체를 인정하지 않겠습니다. 이제 주사위는 윤석열 대통령에게 넘어갔습니다. 신중하게 잘 판단해서 결정해주길 바랍니다. 대통령도 우리를 적으로 간주한다면 우리도 역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 이 무도한 집권 세력에 채찍을 가해주십쇼."

고 이남훈 씨의 어머니 박영수 씨는 내내 울먹이며 피를 토하듯 말했다.

"참으로 비정합니다. 너무나 냉정합니다. 무섭습니다. 이 나라에서 살아가는 것, 살아내야 하는 자체가 무섭습니다. 어떻게 159명 희생자, 우리 아이들을 놓고 정치놀음을 하십니까. 아이를 보내고 나서 저희 엄마들의 눈물은 강이 되었습니다. 아버님들의 한숨은 태산이 되었습니다. 정치하시는 분들은 한 번 그 강을 돌아보고, 그 태산을 돌아보셨습니까. 당신들은 무엇을 봤습니까. 저희는 오늘 삭발합니다. 저희가 할 수 있는 게 더 이상 뭐가 있을까요. 차라리 알려주십쇼. 그럼 저희가 다 하겠습니다. 몸에 불이라도 붙일까요. 오늘 출산장려정책을 내놓는다고 하더군요. 아이 낳지 마십쇼. 이 나라에서 살 수 없습니다. 새끼 키우고 살 수 없는 나라입니다."

전날 서울광장 분향소에서 용산 대통령실 앞까지 눈비를 맞으며 '침묵의 영정 행진'을 벌였던 유가족들은 이날 삭발에까지 나섰다. 스님들이 이발기(바리캉)를 들고 유가족의 머리를 차례로 밀어 머리카락이 한 움큼씩 떨어질 때마다 당사자들은 참혹한 심정으로 눈물을 흘렸고 이를 지켜보던 다른 유가족과 시민들도 소리 내 흐느끼거나 탄식을 토해냈다.

삭발에는 고(故) 이주영 씨의 아버지인 이정민 위원장을 시작으로 고 이남훈 씨의 어머니 박영수 씨, 고 최혜리 씨의 어머니 김영남 씨, 고 김현수 씨의 어머니 김화숙 씨, 고 유연주 씨의 아버지 유형우 씨, 고 김미정 씨의 어머니 박랑주 씨, 고 서수빈 씨의 어머니 박태원 씨, 고 김단이 씨의 외삼촌 김진환 씨, 고 정주희 씨의 어머니 이효숙 씨, 고 문효균 씨의 어머니 이기자 씨, 고 이민아 씨의 아버지 이종관 씨 등 유가족 11명이 참여했다.

이 가운데 고 이민아 씨의 아버지 이종관 씨는 삭발하는 어머니들 앞에 주저앉더니 오른손 검지와 중지를 수차례 입으로 물어뜯어 혈서를 쓰기 시작했다. 주변인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흰 종이 위에 얼룩진 붉은 핏자국은 '진실 규명'이라는 글자를 완성했다. 다른 이들이 황급히 붕대를 찾아 지혈을 시도했지만 이종관 씨는 오른손에 선혈이 낭자한 채 이를 뿌리치며 "애들이 다 죽었는데" "우리 애들이 잘못한 거냐"고 울부짖었다.

삭발이 끝난 뒤 참석자들은 "거부권 건의 국민의힘을 규탄한다" "특별법 즉각 공포하라" "정부는 독립적 조사기구 설치 적극 협조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고 기자회견을 마무리했다.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는 19일 오전 11시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각계 인사들과 함께 특별법 공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이어갈 예정이다.

참여연대는 성명을 내고 "국민의힘은 이태원 유가족들의 피눈물 어린 호소가 들리지 않는가. 거부권 건의는 이태원 특별법에 대한 거부권 행사에 반대한다는 절반이 넘는 국민 여론마저 거부하는 것"이라며 "결국은 윤석열 정부와 집권여당의 책임이 드러나는 것을 막겠다는 '가해자의 조사 거부'와 다르지 않다. 다수 국민의 뜻마저 거스른 국민의힘은 이번 총선에서 심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도 성명에서 "독립적 진상조사기구인 특별조사위원회 구성에서 국회의장 추천권이 그렇게 편파적인가? 가장 최근의 사회적 재난 관련 조사기구인 사회적참사진상규명위원회는 여당 4명, 야당 4명, 국회의장 1명 추천으로 구성되지 않았는가?"라며 "정녕 여당이 동의한 자로 위원장을 추천해야만 중립적이란 말인가?"라고 국민의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아울러 "특조위가 진상규명 목적으로 불기소된 형사기록을 열람하는 것이 왜 독소조항이란 말인가?"라며 "검찰이 불기소 처분한 행안부장관, 서울시장, 경찰청장 등에 대한 기록을 검토하는 것은 조사의 정확성과 신속성을 높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야권도 일제히 윤석열 정권을 강력 성토했다. 더불어민주당 임오경 원내대변인은 국회 소통관 브리핑에서 "대통령실의 지령에 따라 움직이는 허수아비 여당의 모습이 한심하다. 한동훈 비대위 체제에도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며 "특조위 구성 등의 불공정성 운운하는데 특검 삭제, 특조위 활동 및 구성 등 이미 충분히 여당의 의견을 반영해 양보한 법안이다. 그런데도 꼬투리를 잡는 것은 이태원 참사 특별법이 무슨 문제라도 있는 것처럼 호도하려는 술책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정의당 김희서 수석대변인도 브리핑에서 "참사 이후 14개월이 지나 이제 겨우 진상조사를 위한 첫걸음을 떼보려는데 어깃장을 놔도 유분수다. 역사는 오늘 국민의힘의 인면수심 패륜 정치를 절대 잊지 않을 것"이라며 "대형참사를 정쟁화하는 것은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이다. 최소한의 정치적 책무마저 외면한 채 윤석열 대통령의 수호대로 전락한 비루한 여당을 보며 국민은 수치스러움을 느낄 정도"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