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강신규 칼럼]2000년대 중후반 국내에 본격 소개된 후, 20년도 지나지 않아 디지털 미디어 플랫폼(digital media platform, 이하 ‘플랫폼’)은 기존 미디어 산업을 재편하는 키플레이어로 자리잡았다. 인터넷 포털 서비스(이하 ‘포털’)는 검색, 메일, 커뮤니티 등의 기능을 제공하는 수준을 넘어, 언론사별 뉴스를 실시간으로 한데 모아 확인할 수 있는 가판대 역할을 한다. 사회 관계망 서비스(social network service, 이하 ‘SNS’)는 일기장부터, 메모, 편지, 전화 등의 기능 일부를 대체할 뿐 아니라, 각종 정보를 공유하고 비즈니스를 진행하는 수준까지 나아간다. 글로벌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ver the top, 이하 ‘OTT’)의 성장은 기존 유료방송 가입자의 이탈, 이른바 코드 커팅(cord cutting)으로 이어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특히) 어리거나 젊은 이용자층을 중심으로 애초에 유료방송을 경험하지 않고 OTT를 즐기는 코드 제로(cord zero) 현상까지 가시화되는 중이다. 이처럼 플랫폼은 기존 미디어를 대체하고 확장하는 듯 보인다.

* 플랫폼

다양한 애플리케이션(application, 이하 ‘앱’)이 구동하도록 설계된 소프트웨어 환경, 온라인 네트워크 위에 공간을 확보하는 서비스, 개방형 설계를 통해 여러 앱과 콘텐츠가 결합한 소프트웨어 환경이나 서비스 등을 의미한다. 유형으로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사이의 인터페이스 역할을 하는 운영체제(예를 들어, iOS, 안드로이드 OS 등), 인터넷 포털 서비스(구글, 다음, 네이버 등),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페이스북, 트위터 등),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넷플릭스, 유튜브 등), 공유경제 서비스(우버, 에어비앤비 등) 등이 있다. 이 글에서는 미디어 플랫폼, 즉 인터넷 포털 서비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등에 집중한다.

플랫폼의 영향력은 산업 차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오늘날 플랫폼은 일상 속에서 향유된다. 구글, 네이버, 다음과 같은 포털이 말 그대로 인터넷 이용의 모든 부분에 있어 ‘입구’가 되었음은 굳이 이야기할 필요도 없다. 카카오톡, 라인 같은 폐쇄형 SNS는 우리 일상 소통의 중심이 된 지 오래이며 페이스북, 트위터 등의 개방형 SNS는 디지털 시대 사회자본(social capital)의 근간을 이루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OTT 이용의 확장세는 그야말로 무시무시하다. 2022년 10월 기준 유튜브의 국내 월 이용자 수는 4,000만 명에 달한다.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기준 전세계 유튜브 이용자당 월 이용시간은 23.2시간이다. 넷플릭스 국내 이용자 수는 2022년 9월 기준 1,213만 7,780명으로 조사되었다. 지난 20여 년 동안 플랫폼이 어떻게 산업적 성장과 함께 우리 일상 속에 깊이 자리매김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진술들을 찾는 일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플랫폼에 대한 사회담론이 플랫폼이 지닌 다양한 면모를 입체적으로 살피고 있다 보긴 어렵다. 그동안 이뤄져왔던 논의를 거칠게 산업적 관점과 비판적 관점으로 분류할 수 있겠다. 산업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플랫폼은 그 어떤 다른 서비스들보다도 빠른 성장을 가능케 하는 비즈니스이자 조직모델이다. 다른 한편으로 플랫폼을 비판적으로 보는 관점 또한 존재한다. 이에 따르면 플랫폼은 새로운 자본주의를 만드는 기반으로, 앞에서는 네트워크 인프라를 통해 둘 이상의 개인이나 그룹을 다면적으로 상호중개해 그들의 성취욕을 후견하면서, 뒤에서는 이용자 활동과 비/물질 자원을 흡수해 자본가치화하는 신종 시장모델이다. 전자의 관점에서 플랫폼이 벤치마킹해야 할 산업적 지향점이라면, 후자의 관점에서는 비판과 해체를 통해 이용자 활동의 의미를 되찾아야 할 대상이 된다. 이처럼 플랫폼에 대한 관점은 다분히 양가적이다.

중요한 것은 플랫폼이 좋은지 나쁜지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이 우리 사회와 일상에서 부정할 수 없는 영향력을 갖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플랫폼은 우리 일상에 존재하며, 우리는 많은 시간을 플랫폼에 투자한다. 하지만 기존 논의들은 플랫폼의 공세를 현상으로서만 말할 뿐, 그것의 구체적인 실체와 개별 서비스를 하나의 텍스트로 이해하고 살피지 않는다. 플랫폼에 대한 논의는 우리 삶에서 플랫폼이 무엇이고, 플랫폼에 대해 개인과 사회가 어떻게 반응해 왔으며, 플랫폼을 이용하는 행위가 갖는 의미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에 대해 보다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그러한 논의의 단초가 될 지점 몇 가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플랫폼사는 ‘기술 기반의 엔터테인먼트사’다. 여러 사업자들의 정보나 콘텐츠를 모아 제공할 뿐, 정보/콘텐츠 회사가 아니다. 다음이 직접 취재해 작성한 기사를 제공하지는 않는다. 유튜브도 텔레비전이 아니며, 직접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만들지도 않는다. 기본적으로 플랫폼사는 정보통신기술(이하 ‘ICT’)에 기반한다. 그렇다고 단순히 기술만 지닌 회사라고도 보기 어렵다. 플랫폼사들은 기존 미디어사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그로 인해 미디어/콘텐츠/산업도 변화하고 있다. 드물지만 정보나 콘텐츠를 직접 만드는 경우도 있다. 대부분의 OTT가 오리지널 콘텐츠를 만들고게임 퍼블리셔 역시 타사게임만이 아니라 자사게임을 제공한다. 그리고 그렇게 플랫폼사가 직접 만든 콘텐츠는 기존 사업자의 그것을 넘어서는 양적·질적 성취를 보이기도 한다.

많은 플랫폼들이 스스로를 미디어가 아닌 ICT 기업으로 규정한다. 그로 인해 전통적 미디어들에 부과되던 공공성에 대한 요구나 여러 규제들을 피하려하는 측면이 있음을 고려할 수 있다. 플랫폼을 단순히 ICT 기업으로 설명할 경우 문제점은 분명하다. 플랫폼의 개방성, 접근성, 중립성 등과 같은 기술적 양식이 사회적 책임을 회피하는 면죄부로 남용될 우려가 있다. 미국 코넬대 교수인 질레스피(Tarleton Gillespie)는 유튜브와 같은 플랫폼들이 기술적 양식을 핑계로 이중성을 드러낸다며 비판한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서비스라 주장하면서, 실상은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의 형태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플랫폼이 스스로를 ICT 기업으로 규정할 때, 그 내부 알고리즘은 미디어의 사회·문화적 기술이 아닌, 가치중립적 기술로 받아들여지는 효과를 낳는다. 구글이 오픈 웹(open web)에 투자하거나 페이스북이 고유의 생태계를 구축하는 방식은, 마치 정보의 내용과는 무관한 네트워크 정비에 불과한 것으로 보이기 쉽다. 하지만 실제로는 정보/콘텐츠 생산과 가치 구현을 알고리즘의 판단에 맡겨 버림으로써 우리 일상과 사회에서 미디어가 수행해야 하는 여러 역할을 방기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즉, 플랫폼의 기술 양식은 기존 미디어의 콘텐츠에 직접 개입하지 않으면서도, 해당 콘텐츠를 기존 미디어와 유사한 방식으로 전파하고 유통한다는 점에서 미디어 환경 전반과 생태계에 영향을 미친다.

둘째, 기술 기반 엔터테인먼트사로서 플랫폼의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이용자의 데이터를 플랫폼 구축 및 운영 전반에 활용’한다는 점이다. 플랫폼은 개인정보, 쿠키, 메타데이터, 전자추적장치, 그리고 여타 트래킹 기술에 기반해 기존 미디어와는 다른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그 핵심이 바로 데이터다. 플랫폼이 이용자 데이터를 가장 많이 활용하는 사업영역은 콘텐츠 선별·제작, 그리고 이미 만들어진 콘텐츠에 대한 추천이다. 특히 추천의 경우 이용자가 선호하는 장르, 스토리, 이용패턴(예를 들어, 반복이용, 유사장르 이용이력, 이용시간대) 등을 고려해 이루어진다.

물론 추천 서비스가 그 자체로 새로운 것은 아니다. 기존의 많은 미디어들이 추천 서비스를 포함해왔다. 전문가를 등장시켜 특정 콘텐츠를 보고 듣게 하거나, 나온 지 얼마 안 된 콘텐츠, 광고·협찬 의뢰받은 콘텐츠 등을 추천하는 식이었다. 대부분 제공자에 의해 사전에 정해져 이용자에게 제시됐다. 이용자는 다분히 일방적인 추천에 응하거나 응하지 않는 정도의 일을 할 수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플랫폼은 이용자 데이터 분석에 기반해 이용자에게 추천을 한다. 기존의 추천방식이 이용자들의 선호를 염두에 둔 상태에서 전문가가 자신의 가치관, 지식, 선호를 담은 것이었다면, 플랫폼에서는 전문가의 자리를 이용자 데이터가 대체한다.

하지만 그 데이터가 진짜 이용자 자체를 설명해주는 것일까? 이용자의 실제 이용행위가 반영된 것이라고는 해도 그 행위가 실제 이용자의 이용동기에서 비롯된 것인지, 이용자가 이용을 하면서 어떤 생각과 느낌을 가졌는지, 그 이용이 이용자 일상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등에 대해 데이터가 다 설명해줄 수 있을까? 오히려 플랫폼 이용자들은 전통적 의미의 개성을 지닌 미디어/메시지 해석주체라기보다는, 수만 분의 1, 수십만 분의 1로 분할 가능한 알고리즘 분석의 대상체로 전락하게 된 것이 아닐까? 기계에 의해 세분화된 취향의 분류틀 아래 제한된 자족을 하는 데이터 소비주체로서만 유효한 존재, 오로지 알고리즘에 의해 양적으로 계산된 이용습관과 잘게 쪼개진 취향의 가입자, 즉 데이터베이스화된 개인이 돼버리는 것일 수 있다.

플랫폼의 이용자 추천은 이용자 데이터에 기반하는 것임에도 실제 이용자 취향을 고스란히 반영하지는 않는다. 기존의 전문가 추천이 포함하던 사람의 가치와 철학이 플랫폼 추천에서 증발되듯, 이용자 취향 또한 플랫폼 추천과정에서 희석되거나 사라질 수 있다. 이미 데이터베이스화된 개인은 현실 속 개인과 분리된 무언가이기 때문이다. 더 본질적으로는, 이용행위의 결과가 우리의 취향을 설명해주지 않음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취향이 행동의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는 있다. 따라서 행위의 결과를 모았을 때 그 결과가 취향과 관련된다고 보는 것은 어느 정도 타당하다. 하지만 이용행위의 결과가 취향을 형성한다거나, 행위의 결과가 곧 취향은 아니다. 데이터가 이용자는 아니듯, 데이터를 통해 짜 맞춘 취향 역시 실제 이용자의 취향과 들어맞는다고 할 수 없다. 플랫폼이 제공하는 추천 서비스의 근거는 취향이 아니며, 이용행위를 통해 긁어모아 취향과 관련될 수 있는(물론 관련 안 될 수도 있는) 데이터일 뿐이다.

이런 점들이 플랫폼을 비평하는 일을 어렵게 만든다. 자동화된 데이터 포획장치로 기능하는 플랫폼 안에서 이용자는 더 이상 이용주체도 아니고 비평주체는 더더욱 아니다. 알고리즘에 의해 세분화된 취향에 자족할 수밖에 없는, 데이터베이스화된 존재일 뿐이다. 플랫폼이 제공하는 콘텐츠들을 논의하는 일 역시 쉽지 않다. 가령, 넷플릭스, 디즈니+ 등에서 제공하는 많은 오리지널 콘텐츠 시리즈는 수십에서 수백 편에 달하는 개별 텍스트를 기억하고 연결해야 재미를 오롯이 즐길 수 있는 상호텍스트(intertext)다. 플랫폼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향유 패턴을 기존 이론이나 비평기준으로 재단하다가는, 덕력 높은 팬들의 전문성 앞에서 무시되기 쉽다. 전문가 수준의 향유자, 전문가에게 없는 경험치를 지닌 향유자, 온라인과 오프라인 어디서나 격전이 벌어지는 논의공간, 기존의 정형화된 논의를 넘어서는 논의가 넘쳐난다. 플랫폼의 현실, 그것을 둘러싼 여러 맥락들, 그것이 제공하는 텍스트와 상호텍스트에 가 닿을 수 있도록 하는 논의틀 혹은 방법론에 대한 고민이 요청된다.

자동화된 데이터 포획장치로서의 플랫폼에서 벗어나기 위한 사고와 행동도 필요하다. 물론 그 가장 쉬운 방법은 원인인 플랫폼을 이용하지 않는 것일 터다. 하지만 사실상 그것은 어려운 일이며, 무엇보다 근본적인 답도 아니다. 플랫폼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면, 플랫폼의 통제에서 벗어나는 일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구체적인 방법은 통제할 수 없는 생각과 행동을 하는 것일 수 있다. 장소가 바뀌지 않는다면 나를 바꾸면 된다. 데이터는 나의 행동에서 비롯된다. 데이터베이스 추출 로직은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인풋이 바뀌면 같은 로직이라도 아웃풋이 다를 수밖에 없다. 그렇게 했을 때 좁은 시야 안에서 빤한 콘텐츠를 고르고 만들고 추천하는 포섭기계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방식으로 플랫폼의 안과 밖을 상상하고 주체적으로 그것을 즐길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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